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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밥을 먹다(공지영씨의 도가니)

설익은 밥 - 도가니


소설 속 중심사건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 없다. 실화이고 분노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 읽는 동안 계속 답답하고, 주변 현실을 보니 더 답답해지는 소설.

거기에 답답함을 더한 것은 작위적인 인물 설정이었다. 외지=서울에서 흘러와 잘못된 현실에 분노하고 사건에 휩쓸리나 결국 떠나갈 수밖에 없는 주인공, 처음부터 무진을 떠나기 위해 찾아 온 그는 무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리액션만 보여주다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스스로 일을 만들지도 못하는 이방인, 도덕적이지도 않고 흠도 있는 소시민이었던 그는 교사로서 한 일도 없다. 그가 한 일은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것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그 작은 울림에도 고마워하는 남겨진 자들을 보며 답답했다. ‘석양의 무법자’ 셰인은 최소한 악당은 확실히 죽여주고 떠났다. 누구처럼 ‘악당과 싸워야 해’라고 말하고 떠나가 버리지는 않았다. 혹, 공지영 나름의 노무현에 대한 추모인가?

그리고 항상 옳기만 했던 선배, 지금도 옳은 일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비현실적 인물이 등장한다. 전화로 사건을 알려 줄 때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라며 노련하고 경험 많은 인권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시청·교육청에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초보 사회활동가의 모습을 보여 준다. 게다가, 남자도 받는 가족이라는 억압이 그녀에게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나도 애 때문에 힘들어’라는 것을 강요하듯 갑자기 튀어 나온 에피소드 하나만 제외하면 그는 가정에서 자유로운 인물이다. 혹 이제 우리나라는 남자만 가부장제의 노예가 되어 있다고 작가가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인물 설정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따른 이야기도 만들어 놓았지만 제대로 구성을 맞추지 못한 작가의 설익음이 보인다. 게다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도 보인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다시 보여 준다. 윤수가 굳이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일 필요가 없었듯이, 항상 옳은 일만 하는 선배(=사회 운동 세력?)가 늦더라도 꼭 달려오는 후배(=국민들?)를 향한 사랑을 보여 주는 교훈적 결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심리적으로 충격이 큰 소재일수록 작가는 소화를 잘 시킨 후에 글로 써야 한다. 소설은 즉시성을 요구하는 신문기사나 르포가 아니며, 현재에 유의미한 과거의 사건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더더욱 자신의 속으로 녹여내어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빨간 적미로 지은 설익은 밥을 고프지도 않는 배 속에 억지로 집어넣은 듯하다. 다만, 공지영이 과거에 밥을 잘 지었던 걸 기억하기에 한 번 더 다음 밥상을 기대하련다.

by 루디안 | 2009/11/26 14:00 | 독서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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